미국과 중국의 경제위기 시그널이 보인다? 미국의 요구로 버블 만든 일본 경제의 몰락? 오건영 팀장 (통합편) | 815머니톡

미국의 요구로 버블을 키우고 경제가 몰락한 일본의 경험을 통해 현재 진행되는 미중무역전쟁 그리고 한국의 대처방안을 생각해봅니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위기 시그널과 해결법으로 2가지 방안에 대해서도 제시하는 앞으로3년 경제전쟁의 미래 오건영 저자의 분석을 들어보시죠! 두 달전 6회로 나눈 영상을 통합 했습니다.
0:45 일본의 현재를 이해 하기 위해 과거 겪었던 어려움 즉 버블에 대해서 알아보자.
1:10 레이건 대통령 당시 물가가 너무 뛰던 상황 - FED 의장은 폴 볼커 – 경기를 박살 내더라도 물가는 잡겠다는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금리를 20%까지 올렸다.-미국 중소기업의 40%가 파산.
3:00 강한 미국을 만들겠다고 한 로널드 레이건 때 미국금리가 높아지니 달러가 초강세가 되면서 수출이 어려워졌다.
3:25 서독과 일본이 미국에 엄청난 무역 흑자를 기록 하고 있었고 이를 보다 못한 1985년에 미국 플라자 호텔에서 G5 정상회의를 열고 엔화를 2배 이상 절상시켰다.
5:00 일본의 수출산업이 어려워지게 되자 내수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 부동산규제 철폐 등을 시행한다.
5:28 엔화 절상에도 줄지 않는 대일 무역적자. 미국은 다시 1987년 루브르로 G5를 불러서 일본에게 적극적으로 소비를 키울 것을 요구
6:30 일본의 버블 상태는 높아진다. 80년대 초반부터 북해 유전이 개발되고 멕시코도 원유 생산을 늘리면서 중동의 마켓쉐어가 30-40% 줄어들었다.
7:31 유가를 떨어뜨리려는 사우디가 85년 12월부터 증산 경쟁을 시작했고 배럴당 32달러였던 원유가 5개월 만에 10달러까지 추락했다. (1) 유가가 안정됐다.
8:18 (2) 엔화 강세로 수입품의 가격이 낮아졌다. 물가가 안정된 상태에서 부동산 버블이 발생했다. 중앙은행은 물가가 안정 되다 보니 부동산 버블을 보면서도 금리 올리는 정책을 쓰지 못했다.
9:16 수출 기업도 부동산 투자 했고 개인들도 대출 받아서 투자하면서 1988-89년 엄청난 부동산 버블이 만들어졌다.
9:59 1989년 하반기에 일본 중앙은행 총재가 새로 취임하면서 2.5%였던 기준금리를 6%까지 몇 개월 만에 올려버렸다. LTV가 120%였기에 이자 부담 느낀 투자자들이 모두 매물을 내놓으면서 폭락하기 시작했다.
12:20 당시 일본 중앙은행은 투기의 버블이 꺼지는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말하며,
제때 금리를 낮추면서 떨어지는 버블을 방어 해주어야 하는데 팍 떨어지는 것을 방치했다

잃어버린 20년을 자초한 일본중앙은행의 정책 실수 (1) 금리를 올려야 할 때 올리지 않아서 버블이 생긴 것 (2) 버블의 바람을 너무 급격하게 뺀 것
기업은 자금으로 부동산을 사면 안 된다. 고용이 늘지 않기 때문에 일본은행은 이런 투기심리를 완전히 없애버릴려고 했었다.
1년 정도 지나서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중앙은행이 92-93년부터 기준금리 낮추고 경기부양책을 쓴다.
은행 빚으로 산 집이 엄청 폭락한 상태기에 은행의 부실자산이 많아졌는데 그것을 장부가로 평가하게 했다. 겉은 멀쩡해보이지만 속은 썩은 상태로 3-4년의 시간을 보냈다.
은행부실자산 정리한게 아니라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서 인프라 투자를 시작했다. 생산성이 나오지 않는 투자가 됐다. 이러면서 또 몇 년의 세월을 보냈다.
1997년도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하면서 일본경기가 무너지고 수많은 대형 금융사들이 파산했다. 그제서야 공적자금 투입해서 2001-2002년이 되서야 은행들의 부실자산을 정리했다.
1990년도에 시작한게 2002년이 되서야 정리됐다. 잘못된 처방으로 12년을 방치했다
(1)경기부양책이 나왔을 때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정책이 나온게 미스였다. 주택가격을 방어하기 위해 공급을 줄여야 하는데 더 늘렸다.
(2)디플레이션 심리가 생기면 미래에 자산이 계속 하락할거라는 가정을 깔게 되고 소비를 뒤로 미루는 상황이 발생해서 기업이 돈을 못 벌고 결국 고용과 소비가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진다.
인플레이션 심리를 만들려면 화폐공급을 늘려서 가치를 떨어뜨려야 하는데 연금으로 사는 고령자가 많은 일본에서 노인유권자의 눈치를 본 정치인들이 시행 못했다.
2011년도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으로 보험금 지급을 하기 위해 보험사들이 해외 자산을 매각한 돈을 엔화로 바꾸면서 엔강세가 되고 수출은 더 어려워졌다.
엔 약세를 용인해달라고 국제사회에 요청하고 마침 등장한 아베가 3개의 정책 (1) 무제한 양적완화, (2)과감한 재정지출 (3) 규제완화를 통한 민간기업투자 활성화를 한꺼번에 시행한다.
엔화의 공급이 늘어나면 (1)엔화가 약세로 가면서 수출이 잘 된다. (2)엔화가 약세가 되면서 수입물가가 올라간다. 인플레이션이 생기면서 디플레이션 심리를 제어한다.
미국이 일본의 엔화 약세를 용인해준 이유는 일본이라는 큰 경제체제가 장기침체 빠지면 전 세계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고, 지정학적 입장 때문에 엔화 약세를 용인했다

중국은 위안화 환율 유지할 때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본 유출이다.
중국에 환투기를 위해 들어간 세력들은 절상될 것을 기대했는데 절하되면 확 빠질 수 있다.
기업부채가 위험한데 자금 빠져나가며 돈까지 부족하면 굉장한 이슈가 된다.
그래서 달러당 7위안을 잡고 위로 뚫리는 것을 막아줬다.
위안화 약세가 되면 자본유출 우려 생기고, 강세가 되면 수출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고민하던 중국정부가 7위안이 뚫리는 것을 허용.
중국에서 자본유출이 생기면 중국경제가 무너질 것이고 전 세계주식시장 특히 한국 같은 중국의존도 높은 나라는 크게 어려워지게 된다.
위안에서 방어한 중국 정부와 잠시 안정을 찾는 시장세력. 위안화가 추가절하가 되면 중국경기 둔화, 중국경제 경착륙 공포가 생기고 한국에 큰 악영향을 끼친다.
1983년 이후로 1달러당 7.75~7.85 밴드에서 유지되도록 고정환율제 사용하는 홍콩.
미국달러 수요가 확 늘어나면 고정환율을 지키기가 어려워진다. 홍콩 국내 경기 상황과 상관없이 미국과 금리를 똑같이 유지해야 하는 홍콩.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포기한 나라.
홍콩시민들이 홍콩정부의 고정환율제 약점을 파고들어가는 것으로 전 사회운동으로 번지면 홍콩달러 페그제가 무너지고 홍콩경제가 흔들리고 한국경제도 어려워진다.
홍콩 금융이 흔들리면 홍콩부동산에 투자한 중국투자자들과 중국 은행들에 부실 생길 수 있다
홍콩정부를 아프게 하는 지혜로운 시민운동이다. 그러나 효과 발휘하면 한국경제도 피해를 입는다.

독일에서 500억 유로를 경기부양에 쓰겠다고 했는데 이 규모가 독일 경제에 큰 영향은 주지 않지만 더 쓸수도 있다 라고 한 부분이 긍정적.
문제는 무역전쟁, 환율전쟁으로 무너지는 경제를 재정정책으로 막는 것은 무리다.
무역전쟁이 완화된 상태에서의 국제공조가 이루어질 때 재정정책이 효과가 있다.
2016년 사우디와 러시아가 원유감산 공조를 했다. 공조는 상대가 좋아서 하는게 아니라 다 죽을 것 같아서 하게 된다.
중국에 관세를 때리는 게 미국경기도 위축시킬 수 있어 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한다. 미국 당국도 과도한 무역전쟁은 미국 자체 경기도 크게 훼손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극단적인 상황에서 공조로 바뀔수 있다.
경기 회복을 위해서는 여러 나라의 달러 약세 공조가 필요하다. 모두 다 죽겠다, 비관론이 팽배한 그 시점에 극적인 공조가 이루어질 수 있다.
(1)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하자 전 세계가 다 같이 금리를 내리면서 정책공조 들어갔다. 2주 후부터 반등하기 시작한 주식시장.
(2)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892까지 떨어진 코스피 지수가 한미 통화 스왑 이후 1100까지 반등
3) 2011년 유럽위기 때 유럽이 경기부양에 적극 나서자 미국이 오퍼레이션 트위스트 라고 양적 완화를 같이 시행해서 도와줬다.
전 세계 공조에 균열이 가고 무역전쟁, 환율전쟁으로 갔을 때는 성장을 좀 먹는다.
우리만 잘 한다고 경기가 나아지지 않는다. 전 세계의 국제정세, 경제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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